🏛 ToHistory

🌄 일제강점기

청산리 대첩

6일 동안 10번 싸워 10번 이긴 기적

일시
1920
장소
청산리 일대(만주, 현 중국 지린성)
한국측 세력
독립군 연합(김좌진·홍범도)
상대측 세력
일본군 2만여 명

발발 원인

봉오동 전투(6월) 대패 이후 일본은 훈춘 사건을 구실로 대규모 토벌대(2만여 명)를 만주로 파병했고, 독립군 연합부대가 청산리 일대 산악지형을 활용해 맞섰다.

역사적 의의

독립군이 거둔 최대 규모의 승리로 무장독립투쟁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봉오동 전투 패배 후 일본은 훈춘 사건을 구실로 2만여 명의 토벌대를 만주에 보냈다.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부대가 연합해 청산리 일대 산악 지형을 활용, 백운평·천수평·어랑촌 등에서 6일간 10차례 싸워 모두 승리했다.

가장 극적인 순간

6일간 10번의 전투. 독립군은 지형을 알았다. 산과 골짜기가 독립군의 편이었다. 일본 정규군 2만 명을 상대로 독립군은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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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한국측 · 북로군정서 사령관

백운평 골짜기에서 첫 전투 승리를 거두고, 6일간 전략적 이동과 기습을 이끔

결말: 1930년 공산주의 계열 인물에게 암살당함(독립운동 내부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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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한국측 · 대한독립군 지휘관

봉오동 전투 이후 청산리에서도 일부 전투를 김좌진 부대와 함께 지휘함

결말: 이후 1921년 자유시 참변을 거쳐 소련으로 이주, 카자흐스탄에서 사망(2021년 유해 귀환)

🎖️

아즈마 지대(동지대)

상대측 · 일본군 간도 파견 토벌부대

2만여 병력으로 독립군 근거지를 소탕하려 했으나 6일간 10차례 교전에서 모두 패배함

결말: 청산리 일대에서 큰 피해를 입고 만주에서 물러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