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귀주대첩
노장의 역전극 — 10만 거란군을 흰 강에서 무찌르다
- 일시
- 1019
- 장소
- 귀주(평안북도 구성)
- 한국측 세력
- 고려(강감찬)
- 상대측 세력
- 거란(소배압의 10만 대군)
발발 원인
거란은 세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했다. 1차(993)에서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오히려 얻었고, 2차(1010)에서 개경이 함락되는 수모를 겪었다. 1018년 3차 침입에서 거란 장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왔다.
역사적 의의
거란의 완전한 격퇴로 이후 거란의 고려 재침이 사라지고 고려·거란·송 간 세력균형이 안정되었다.
1019년 거란 장수 소배압이 1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입했다. 71세의 노장 강감찬은 흥화진에서 소가죽으로 강물을 막았다가 거란군이 건널 때 터뜨렸고, 귀주에서 총공격을 퍼부어 거란군을 거의 전멸시켰다.
가장 극적인 순간
71세의 강감찬 장군은 거란군이 강을 건너기를 기다렸다. 상류에 소가죽으로 만든 거대한 댐을 쌓아뒀다. 거란 기병이 강 한가운데에 들어섰을 때, 댐이 터졌다. 10만 군사 중 살아서 돌아간 자는 수천에 불과했다. 이후 거란은 다시는 고려를 침략하지 않았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싸워야 한다면 강물로 싸워라”
— 강감찬 전략의 핵심을 요약한 후대의 표현
장수
강감찬
한국측 · 고려군 총사령관, 당시 71세
흥화진에서 소가죽으로 강을 막았다 터뜨리는 작전을 지휘함
결말: 귀주대첩 승리 후 개선해 현종의 환대를 받았고, 83세에 사망
소배압
상대측 · 거란군 총사령관
초반 진격에 성공해 개경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보급이 끊겨 고립됨
결말: 귀주대첩에서 대패한 뒤 거란으로 귀환, 이후 거란의 고려 침략이 사라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