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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행주대첩

부녀자까지 돌을 날라 왜군 3만을 막았다

일시
1593
장소
행주산성(경기 고양)
한국측 세력
조선 권율의 2,300 병력
상대측 세력
왜군 3만

발발 원인

임진왜란 중 평양성 탈환(1593.1) 이후 서울로 후퇴하던 왜군이 행주산성에 주둔한 권율 부대를 제거하려 했다.

역사적 의의

민관군이 합동으로 절대 열세를 극복하며 임진왜란 전세를 조선에 유리하게 이끈 전투다.

1593년 권율은 2,300여 명의 병력으로 행주산성에서 3만 왜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화차 등 화약 무기를 활용하고, 화살이 부족해지자 산성의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보급하는 등 민관군이 합동으로 9차례의 공격을 모두 격퇴했다.

가장 극적인 순간

화살이 떨어져갔다. 군사들의 손이 텅 비어갔다. 그때 산성의 여인들이 움직였다. 치마폭을 걷어 올리고 돌을 날랐다. 한 명이, 두 명이, 수십 명이. 군인이 아닌 사람들이 전쟁을 지탱했다. 그날 행주산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장수

🏰

권율

한국측 · 도원수

화차(화약 무기)와 행주치마에 돌을 나른 여인들의 협력으로 왜군 3만을 격퇴함

결말: 이후 도원수로 계속 활약하다 1599년 사망

⚔️

우키타 히데이에

상대측 · 왜군 선봉 지휘관

3만 병력으로 9차례에 걸쳐 행주산성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함

결말: 행주산성 공략에 실패한 뒤 서울 방면으로 퇴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