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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1776 ~ 1897

정조는 규장각을 세우고 수원 화성을 축조하며 강력한 개혁 정치를 펼쳤다. 그러나 정조 사후 안동 김씨 등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가 이어지며 삼정(전정·군정·환곡)이 문란해졌고, 백성들의 고통이 커졌다. 이에 저항해 홍경래의 난(1811)과 임술농민봉기(1862) 같은 대규모 민란이 일어났다. 한편 정약용 등 실학자들이 학문을 집대성했고, 판소리·풍속화 같은 서민 문화가 널리 퍼졌으며 천주교와 동학이 새로운 사상으로 확산되었다.

주요 사건

1776년정조 즉위와 규장각 설치

정조가 즉위해 규장각을 설치하고 젊은 학자들을 등용해 개혁 정치의 기반을 마련했다.

1796년수원 화성 완공

정조가 정약용에게 설계를 맡겨 거중기 등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수원 화성을 완공했다.

1800년대 초세도정치 시작

정조 사후 순조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안동 김씨 등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가 시작되었고, 매관매직이 성행했다.

1811년홍경래의 난

홍경래가 평안도 지역에 대한 차별과 세도정치의 수탈에 반발해 봉기를 일으켰다. 한때 청천강 이북 지역을 장악했으나 결국 정주성에서 관군에게 진압되었다.

1860년동학 창시

최제우가 서학(천주교)에 대응해 유·불·선을 아우르며 '인내천' 사상을 담은 동학을 창시했다.

1862년임술농민봉기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으로 고통받던 농민들이 진주를 시작으로 전국 70여 곳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1863~1873년흥선대원군의 개혁

흥선대원군은 고종을 대신해 정치를 맡아 세도정치의 폐단을 없애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 경복궁을 다시 짓고, 붕당의 근거지였던 서원을 대폭 정리했으며,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으려 했다.

1866년병인양요

프랑스가 천주교 박해(병인박해)를 구실로 강화도를 침략했으나 양헌수 등이 이끄는 조선군에게 격퇴당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군은 외규장각의 의궤 등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1871년신미양요

미국이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강화도를 침략했다.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군이 광성보에서 격렬히 항전했으나 패배했고, 이후 흥선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워 통상수교거부 의지를 밝혔다.

1876년강화도조약 체결

일본이 운요호 사건을 구실로 강화도조약 체결을 강요했다. 이는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지만, 해안 측량권과 치외법권을 인정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좋았던 점

  • · 장시(場市)가 전국적으로 열리면서 물건을 사고팔 기회가 늘어나 상업으로 부를 쌓는 상민이 생겨났다
  • · 판소리·탈춤·풍속화 등 서민들이 직접 즐기고 만드는 문화가 크게 발달했다
  • · 공명첩을 사거나 족보를 위조해 신분을 상승시킬 기회가 생겼다
  • · 고추를 활용한 김치, 국밥 등 오늘날과 비슷한 음식 문화가 자리 잡아 먹거리가 풍성해졌다
  • · 서당 교육이 확대되며 평민 자제들도 글을 배울 기회가 늘어났다

힘들었던 점

  • · 세도정치로 매관매직이 성행해 탐관오리의 수탈이 극심해졌다
  • ·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으로 죽은 사람과 갓난아기에게까지 세금이 매겨졌다
  • · 홍경래의 난, 임술농민봉기 등 잦은 민란과 그 진압 과정에서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거나 삶의 터전을 잃었다
  • · 가뭄·홍수 등 자연재해와 겹친 흉년으로 유랑민과 화전민이 크게 늘었다
  • · 천주교 신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신유박해 등)로 처형과 유배가 잇따랐다

알아두면 좋은 사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비용을 마련하려고 발행한 '당백전'은 원래 상평통보보다 100배 가치를 매겼지만 실제 가치는 그에 못 미쳐 물가가 폭등했고, 백성들 사이에서 '땡전'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