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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1608 ~ 1776

조선 중기에는 인조반정 이후 붕당정치가 심해지고, 청의 침입(정묘호란·병자호란)으로 큰 시련을 겪었다. 이후 북벌론이 제기되었고, 대동법이 전국으로 확대 시행되며 공납 부담이 완화되었다. 영조는 붕당 갈등을 줄이려는 탕평책을 펴고 균역법으로 백성의 군포 부담을 줄였으며, 이 무렵 실학이 싹트기 시작했다.

주요 사건

1608대동법 시행

집집마다 특산물을 바치던 공납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쌀·베·동전 등으로 대신 내게 한 제도다.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수능 포인트 대동법의 핵심은 '공납(호 단위 특산물)을 토지(결) 단위의 쌀·베·동전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로 인해 공인이 등장해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대신 조달했고, 상품화폐 경제가 발달했다는 점이 자주 출제된다. 방납의 폐단 → 이원익 건의 → 경기도 시범 실시(광해군) → 전국 확대(숙종) 순서를 기억하자.

1610동의보감 완성

허준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의학 지식을 모아 동의보감을 완성했다. 백성들이 쉽게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도운 책이다.

수능 포인트 동의보감은 허준이 편찬했으며, 향약(국산 약재) 중심 처방과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자주 출제된다.

1623인조반정

서인 세력이 광해군의 중립외교와 폐모살제(인목대비 유폐·영창대군 살해)를 명분 삼아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세운 정변이다. 이후 친명배금 정책으로 후금을 자극해 정묘호란의 원인이 되었다.

수능 포인트 인조반정(1623)의 명분은 광해군의 중립외교(명·후금 사이 실리 외교)와 폐모살제다. 이후 서인 정권의 친명배금 정책 → 정묘호란(1627) → 병자호란(1636)으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를 기억하자.

1627정묘호란

후금이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과 친명배금 정책을 구실로 조선을 침입했다. 조선은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는 조건으로 화의를 맺었다.

수능 포인트 정묘호란(1627, 후금과 형제 관계)과 병자호란(1636, 청과 군신 관계)의 결과를 혼동하지 않도록 구분해서 기억하자.

1636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

국호를 청으로 바꾼 후금이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다시 침입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항전했으나 결국 항복했고,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 의식을 치렀다.

수능 포인트 병자호란의 인과 흐름: 삼전도 굴욕(1637, 청과 군신관계) → 봉림대군이 효종으로 즉위해 북벌론 추진 → 국력 한계로 실패. 주화론(최명길, 현실론)과 척화론(김상헌, 명분론)의 대립도 함께 출제된다.

1649~1659효종의 북벌론

병자호란의 굴욕을 씻고자 효종은 송시열 등과 함께 군사력을 키워 청을 정벌하자는 북벌론을 추진했다. 하지만 국력의 한계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1659~1674예송논쟁

효종과 효종비가 죽었을 때 자의대비(인조의 계비)가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두 차례 논쟁을 벌였다. 이는 예법 해석 차이이자 왕권의 성격을 둘러싼 정치 다툼이었다.

수능 포인트 기해예송(1659, 서인 승리·기년설)과 갑인예송(1674, 남인 승리·기년설)은 결과가 서로 다르다는 점, 서인=이이 계열(기호학파)·남인=이황 계열(영남학파)이라는 학통 구분이 자주 출제된다.

1708대동법 전국 확대 시행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시작된 대동법이 이후 여러 왕을 거치며 확대되다가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 함경도·평안도 등 일부를 제외한 전국에서 시행되었다.

수능 포인트 대동법 확대 순서: 경기도(광해군, 1608) → 강원도(인조) → 충청·전라도(효종) → 경상도(현종) → 황해도(숙종, 1708)로 전국 시행이 완료됐다는 흐름이 자주 출제된다.

1725영조의 탕평책(완론탕평)

영조는 붕당 간 대립을 완화하기 위해 노론·소론 등에서 온건한 인물을 고루 등용하는 완론탕평을 펼치고, 탕평비를 세워 탕평의 의지를 밝혔다.

수능 포인트 영조의 완론탕평(온건파 고루 등용)과 정조의 준론탕평(시비를 가리는 강경 탕평, 규장각·장용영 설치)을 구분하는 문제가 자주 나온다.

1750균역법 시행

영조는 백성들이 부담하던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이는 균역법을 시행했다. 줄어든 세금은 결작(토지에 부과하는 세금)과 선무군관포 등으로 보충했다.

수능 포인트 균역법(1750, 영조)의 핵심은 '군포 2필 → 1필 감면 + 결작(토지 1결당 2두)·선무군관포로 보충'이다. 대동법(공납→전세화)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좋았던 점

  • · 대동법 시행으로 특산물 대신 쌀·베·동전으로 세금을 내게 되어 공납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
  • · 대동법으로 공인이 등장하면서 상업과 수공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 · 허준의 동의보감 덕분에 향약(국산 약재)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널리 퍼졌다.
  • · 서얼과 중인층이 신분 상승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 사회에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 · 영조의 균역법 시행으로 군포 부담이 2필에서 1필로 줄어 백성의 삶이 한결 나아졌다.
  • · 영조가 탕평책을 펴 붕당 간 대립을 완화하려 노력했다.

힘들었던 점

  •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많은 백성이 죽거나 청에 포로로 끌려갔다.
  • · 삼전도의 굴욕 이후 청에 대한 군신관계와 조공 부담이 백성들에게 큰 짐이 되었다.
  • · 전쟁으로 논밭이 황폐해지고 식량 부족으로 굶주리는 사람이 많았다.
  • · 붕당 간 대립(예송논쟁 등)이 심해지면서 정치가 백성의 삶보다 명분 다툼에 치우치기도 했다.
  • · 탕평책에도 불구하고 붕당의 뿌리 깊은 대립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알아두면 좋은 사실

병자호란 때 청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성들을 '환향녀(還鄕女)'라 불렀는데,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해 나라에서는 '회절강'이라는 강에서 몸을 씻으면 과거를 묻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