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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전쟁

1945 ~ 1960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지만,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남과 북을 나누어 다스리면서 38선이 분단선으로 굳어졌다. 좌익과 우익 세력이 나라의 방향을 두고 대립하는 가운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북쪽에서도 별도의 정권이 들어섰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시작되어 국토 대부분이 전쟁터가 되었으며, 인천상륙작전과 중국군 개입 등 급격한 전세 변화 속에 3년간 이어진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일단 멈추었다. 휴전 이후에도 이승만 정부의 장기 집권과 부정부패가 계속되다가, 1960년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마산에서 시작된 시위가 전국으로 번져 4·19 혁명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며 허정 과도정부가 들어섰다.

주요 사건

1945.08.158·15 광복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35년간의 식민 통치가 끝나고 광복을 맞이했다. 전국에서 만세 시위와 환호가 이어졌다.

1945.0938선 분할과 미·소 군정

광복 직후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남과 북에 진주해 38선을 경계로 군정을 실시했다. 이는 임시로 그어진 선이었지만 점차 분단을 고착시키는 경계선이 되었다.

수능 포인트 광복 이후 흐름은 '광복(1945.8) → 미·소 군정·38선 분할 →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신탁통치 결정, 찬탁·반탁 대립) →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 유엔 총회의 남한 단독 총선거 결의 → 5·10 총선거 →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8.15)' 순서로 반드시 정리해 둘 것. 특히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협상(김구)이 이 사이에 있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1948.08.15대한민국 정부 수립

유엔 감시 하에 남한에서 5·10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 국회가 구성되었고, 헌법 제정 후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1950.06.256·25 전쟁 발발

새벽에 북한군이 38선 전역에서 기습 남침하며 6·25 전쟁이 시작되었다.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했으나 유엔군의 참전으로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1950.09.15인천상륙작전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며 서울을 수복했고,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 유역까지 진격했다.

1953.07.27정전협정 체결

3년간의 전쟁 끝에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휴전선이 그어졌다. 이는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춘 것으로, 오늘날까지 정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수능 포인트 정전협정은 '휴전'일 뿐 '종전'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대한민국은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이 자주 출제된다.

1960.04.194·19 혁명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이 대규모 부정선거를 저지르자 마산에서 항의 시위가 일어났고(3·15 의거), 이 과정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발견되며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월 19일 학생과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며 허정 과도정부가 수립되었다.

수능 포인트 4·19 혁명의 전개 과정은 '3·15 부정선거 → 마산 시위(3·15 의거, 김주열 사건) → 4·19 전국 시위 → 이승만 하야 → 허정 과도정부 → 내각책임제 개헌(제2공화국)' 순서로 반드시 정리해 둘 것. 이후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제2공화국이 단명했다는 점은 이 시기(1945~1960) 범위 밖의 다음 사건으로 구분해 기억한다.

좋았던 점

  • · 35년 만에 되찾은 광복으로 우리말과 우리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 · 일제가 강요하던 창씨개명, 신사참배 등에서 벗어나 우리 이름과 전통을 되찾았다.
  • ·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국민이 스스로 나라를 이끌어갈 정치적 틀이 마련되었다.
  • · 전쟁 중에도 서로를 돕는 이웃과 가족 간의 정, 피난지에서 나눈 나눔의 문화가 이어졌다.
  • · 휴전 이후에는 폐허 위에서나마 다시 학교가 문을 열고 아이들이 배움을 이어갈 수 있었다.

힘들었던 점

  • · 전쟁으로 공장과 철도, 다리 등 산업·사회 기반 시설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 · 수백만 명의 피난민이 고향을 떠나 부산 등 남쪽으로 몰려들며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 · 가족이 남과 북으로, 혹은 피난길에서 뿔뿔이 흩어져 만나지 못하는 이산가족이 대규모로 생겨났다.
  • · 전쟁고아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넘쳐났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크게 부족했다.
  • · 38선 분단으로 같은 민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을 겪었다.
  • · 전후 복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의 장기 집권, 부정부패, 3·15 부정선거 등으로 국민들이 정치적 억압과 좌절을 겪었다.

알아두면 좋은 사실

전쟁 중 부산은 임시로 대한민국의 수도 역할을 했는데, 이 시기를 '임시수도 부산 시절'이라고 부르며 당시 정부 청사로 쓰인 건물이 지금도 부산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