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가야
BC 57 ~ 668
삼국·가야 시대는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와 낙동강 유역의 가야 연맹이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병립하던 시기다(BC 57 ~ AD 668). 각국은 왕권을 강화하고 영토를 넓히기 위해 정복 전쟁을 벌였으며, 4~6세기에는 백제(근초고왕)·고구려(광개토대왕·장수왕)·신라(진흥왕) 순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불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여 왕권 강화에 활용했고, 각국 고유의 금속 공예·고분 문화가 발달했다. 6세기 말~7세기에 신라가 당과 연합(나당연합)하여 백제(660)와 고구려(668)를 차례로 멸망시키며 삼국을 통일했다.
주요 사건
백제 근초고왕은 마한 잔여 세력을 통합하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해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이 시기 백제는 중국 남조, 왜와 활발히 교류하며 해상 강국으로 성장했다.
고구려 소수림왕은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을 세워 인재를 길렀으며 율령을 반포해 국가 체제를 정비했다. 삼국 중 가장 먼저 불교를 공인했다.
백제 침류왕은 동진의 승려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를 공인했다. 이후 백제 불교는 일본에 전파되는 통로 역할을 했다.
수능 포인트 삼국의 불교 공인 순서(고구려 372 → 백제 384 → 신라 527)를 반드시 순서대로 기억할 것. '불교를 삼국 중 가장 먼저 받아들인 나라는 백제다'는 오답이며, 가장 먼저 받아들인 나라는 고구려다.
광개토대왕(391~413)은 만주와 요동을 정복하고 백제를 공격해 한강 이북까지 진출했으며, 신라의 요청으로 왜군을 격퇴해 한반도 남부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영락'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했다.
장수왕은 평양 천도(427) 이후 남진 정책을 강화해 백제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였으며(475), 신라·백제는 이에 맞서 나제동맹을 맺었다.
지증왕의 명을 받은 이사부는 나무 사자를 이용한 계략으로 우산국(울릉도)을 복속시켰다(512). 우산국에는 독도가 포함되어 있어 이 사건은 독도 영유권의 역사적 근거로 언급된다.
수능 포인트 이사부의 우산국 복속(512, 지증왕)은 독도 영유권의 역사적 근거로 자주 출제되며, 이사부가 이후 진흥왕대 대가야 정벌(562)에도 참여했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 둘 것.
신라 법흥왕은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했다(527). 이후 율령 반포, '건원' 연호 사용과 함께 왕권 강화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전기 가야 연맹을 이끌던 금관가야는 신라의 압박 속에 법흥왕에게 항복하며 멸망했다(532). 이후 후기 가야 연맹의 중심은 대가야로 옮겨갔지만, 대가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신라에 병합되었다.
진흥왕은 화랑도를 국가적인 인재 양성 조직으로 정비하고, 백제와 함께 차지했던 한강 유역을 독차지했으며, 대가야를 정복해(562) 가야를 완전히 병합했다. 새로 넓힌 영토를 순행하며 북한산비·창녕비·황초령비·마운령비 등 순수비를 세웠다(568).
수능 포인트 '화랑도는 진덕여왕이 설치했다'는 서술은 오답이며,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정비한 왕은 진흥왕이다. 진흥왕 순수비 4기(북한산비·창녕비·황초령비·마운령비)의 위치를 지도와 연결해 영토 확장 범위를 묻는 문항, 대가야 정복(562)과 가야 완전 병합을 연결하는 문항이 자주 출제된다.
신라 무열왕과 김유신은 당과 군사동맹(나당연합)을 맺어 백제를 멸망시켰고(660, 황산벌 전투), 이어 고구려도 내부 분열 끝에 멸망시켰다(668). 이후 당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하자 신라는 매소성·기벌포 전투에서 당군을 물리쳐 실질적인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676).
수능 포인트 나당연합(648, 김춘추 외교) → 백제 멸망(660, 황산벌 전투·계백) → 고구려 멸망(668, 연개소문 사후 내분) → 나당전쟁(당의 한반도 지배 야욕) → 매소성 전투(675)·기벌포 전투(676) → 삼국 통일(676) 순서를 반드시 암기할 것. 각 전투와 인물(김유신, 김춘추, 계백, 연개소문)을 연결하는 사료·연표형 문제가 매년 출제된다.
경주 지역의 6촌 세력이 연합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며 신라(당시 국호 사로국)를 건국했다. 이후 박씨·석씨·김씨가 번갈아 왕위를 이었으며, 신라는 삼국 중 중앙집권 국가로의 발전이 가장 늦었다.
좋았던 점
- · 왕과 귀족은 넓은 땅과 노비를 소유하며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다
- · 국가가 성장하며 도읍(수도)에는 시장과 사원이 들어서 활기가 넘쳤다
- · 가야와 백제는 해상·철기 교역으로 다른 나라의 진귀한 물건을 접할 수 있었다
- · 불교 수용 이후 사찰을 중심으로 학문·예술이 발달해 문화적 자부심이 커졌다
- · 삼국 간 경쟁 속에서도 사신 교류·혼인 동맹 등 평화로운 협력이 이뤄지기도 했다
힘들었던 점
- · 평민(농민)은 농사 외에 잦은 전쟁에 병사로 끌려가는 군역 부담을 졌다
- · 세금(조세)과 노동력 징발(요역)을 동시에 부담해 생활이 매우 고달팠다
- · 신라의 골품제처럼 신분에 따라 관직·집 크기·옷 색깔까지 엄격히 제한받았다
- · 노비는 사람이 아닌 재산으로 취급되어 매매·상속의 대상이 되었다
- · 삼국 간 전쟁이 끊이지 않아 백성들은 전쟁터가 된 국경 지역에서 늘 불안에 떨었다
알아두면 좋은 사실
신라의 골품제에서는 신분(골품)에 따라 옷의 색깔, 집의 크기, 심지어 수레바퀴 장식까지 법으로 정해 놓아서, 아무리 돈이 많아도 진골이 아니면 6두품은 화려한 자주색 옷을 입을 수 없었어요!